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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May 9, 2012
가야금 산조의 명인 안기옥의 복권은 남한의 입김으로
월북 예술가 안기옥 (1894~1974)선생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으나 명예회복 된 것은 남한 예술인들의 지속적인 접견 문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안기옥은 가야금 산조의 명인이자 판소리 남도 창법의 대가로 1946년 월북하여 북한에서 왕성한 예술활동을 펼쳤으나, 60년대 남로당 숙청시기와 맞물려 한차례 숙청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기옥 선생의 아들 안성현 (1920~2006)씨로부터 남도창법을 전수받은 탈북자 방 씨 (평양출신, 여, 2002년 한국 입국)는 안기옥 선생에 대한 이 이야기는 북한 예술인들은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안기옥 선생이 김일성과 창법 논쟁 후 당시 김일성을 절대적으로 떠받들던 핵심 측근들의 눈총을 샀고, 그 후 관리소(정치범수용소)로 보내졌다.”
 
김일성이 전라남도에서 유래한 남도창법은 복고주의 풍이므로 북한식 서도창법을 전수하도록 지시했다는 이야기는 김일성 회고록에도 언급되는 내용이다.
 
방 씨는 “그 후 남북예술가 교류가 있을 때마다 계속 남한에서 안기옥 선생에 대해 물어왔다. 계속되는 요청에 북한은 당시 안 선생을 지방 예술진흥을 위한 예술진흥단체를 꾸리기 위해 지방으로 파견했다고 변명했다. 그리고 나서 남측에서 만나자고 할 경우를 대비해 관리소에서 빼내와 양강도에 있는 도립극장에 임시로 파견했다”고 설명한다.
 
월북 발레리나 최승희로부터 발레를 배운 경험이 있던 요덕수용소 출신자 김영순 씨도 최승희와 마찬가지로 안기옥도 자본주의와 유교 복고주의의 잔재를 뿌리뽑기 위한 60년대 숙청바람의 희생자라고 증언 한 바 있다.
 
탈북자 방 씨에 따르면 정확한 숙청시기와 남북교류 시기는 북한 예술인들 사이에서도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안기옥이 관리소에서 나와 복권된 후 1974년 혜산에서 자연사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1960년대 들어 북한은 통일전전전술 차원의 위장 평화공세로 각종 평화협정 (1962, 1963), 사회단체연석회의 등을 제안 (1966) 한 바 있다. 남북교류는 당시의 각종 협정체결 및 제의 등을 위한 북한당국과의 접촉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이 증언은, 최근 북한 당국이 신숙자 씨 모녀에 대한 공식입장을 표명한 것과 일맥 통하는 사건으로 국내외 NGO활동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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