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을 위해서는 왜 사람들이 거리로 뛰어 나오지 않는가?
Benedict Rogers
10일 전 런던의 남서쪽에 위치한 뉴몰든 (New Malden)이라는 곳에서 북한에 대한 행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 행사를 위해서 전 조선인민군의 대령이자, 지금은 북한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있는 한 탈북자도 초청 되었다. 이 자리에는 40여 명의 사람들이 참석했다. 북한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는 주제에 대해서 그것도 토요일밤에, 교외지역에서 진행되는 행사였기에, 나는 그럭저럭 만족스러워 하며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청중들은 감동한 듯 보였고 어떤 이들은 이 활동을 진심으로 돕고자 했다.
하지만, 이후 나는 그날의 행사를 다시 한 번 떠올리고 생각해보았다. 아니 잠깐만!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국가가 아니던가! 최소한 십만 명의 사람들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관리소)에 감금되어 있으며, 정치범수용소는 스탈린의 굴락 (강제노동수용소)이나 나치의 강제수용소보다도 더 심각하다고 알려져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mmission of Inquiry)는 북한정권이 ‘다수의’ ‘반인도범죄’를 저질렀고, 그 범죄는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것’이며, “북한 인권침해의 본질, 그 심각성과 규모는 동시대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라고 결론내렸다. 조사위원회는 본 사건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촉구했으며, 조사위원장이자 호주의 판사 출신의 마이클 커비(Michael Kirby) 위원장은 북한인권 위기상황과 홀로코스트를 비교해 봤을 때, 그 둘은 아무런 차이가 나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오늘날 북한에는 어떠한 자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누구도 정권에 반대하는 생각이나 소신을 감히 표현할 수 없다. 누군가 김씨 왕조의 권위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면, 그는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지거나 처형당한다. 북한의 모든 사람들은 김씨 왕조를 숭배하도록 강요받으며, 김씨왕조에 자신의 모든 헌신을 보여야 한다. 이것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신들의 왕조를 신격화하는 독재자가 다스리는 나라, 북한이다. 북한에서 만약 크리스마스캐롤이 불려진다면, 오로지 하나의 오래만이 불려질 것이다. “우리 세 김씨왕조를 위하여”라는.
그렇다면, 런던 교외지역 행사에서 북한에서 일어난 이러한 잔혹행위들을 듣기 위해 40명이 나타났다는 것에 왜 우리는 만족해야하는가? 수 많은 사람들이 가자지구나 이라크 전쟁을 때문에 거리로 뛰어 나왔듯, 북한의 잔혹한 범죄에 대해서는 왜 거리로 나와서 항의하지 않는 것인가? 왜 남아프리카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와 같은 대규모 대중 반대 시위가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왜 북한문제에 있어서는, 보노(Bono)나, 리차드 기어(Richard Gere), 조지 클루니(George Clooney),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와 같은 유명한 사람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는 것인가? 왜 세계유엔인권선언의 모든 조항을 거부하고, 짓밟고, 부수고,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북한과 같은 나라의 문제가 세계의 양심과 인류애를 위한 주요한 문제가 되지 못하고, 오로지 소수의 특이한 사람들만 관심을 가지는 문제가 되어야 하는가?
무지는 더 이상 그 어떤 변명도 될 수 없다. 이제 유엔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에서부터 쉽게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책들까지, 북한인권에 대한 풍부한 문헌들이 있다. Channel 4, BBC, CNN은 북한에 관한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유투브에 ‘북한(North Korea)’ 이라고 검색만 하면,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에 관한 수 많은 영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세계가 북한인권에 대해 ‘침묵’을 일관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하다고 볼 수도 있다. 무관심만 있는 것이아니라, 북한에 대한 유화주의자들도 있고, 북한에 대해 어떠한 비판도 적대시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달 초, 14년전 평양에 대사관을 열었던, 전 영국외관 제임스 호워(James Hoare)는 영국의회에서 주최하고 영국의 북한대사관에서 지원하는 사진 전시회를 지지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물론 이와 같은 ‘문화적 교류’는 그 자체로 유용할 수 있으며, 나 또한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국가인 북한을 개방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포용(egagement)”의 방법들을 옹호해 왔다. 나는 분명히 고립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인권을 대가로 문화적 교류를 하는 것은 지지하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 이 글을 포함하여 그 동안 진정으로 유엔의 반인도범죄 조사위원회의 설립을 지지해왔으며, 조사위원회 보고서의 권고들은 실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나는 우리가 필요한 모든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 지팡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압력과 중요한 “포용”의 방법들을 혼합한 다양한 방안들을 개발해야 한다. 내가 호워의 글에서 진짜로 반대하고자 하는 것은 호워가 북한에서 발생하고 있는 비극의 엄중함을 묵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그의 글에서 북한에 대한 깊은 “포용”를 위해 “미사일, 핵실험, 인권이슈를 다루는 것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북한문제에 관심을 보인 몇 안 되는 의원들이 “인권문제에 집착”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포용”을 방해해왔다고 논했다.
호워 씨의 북한에 대한 이와 같은 발언들은 1930년대 스탠리 볼드윈(Stanley Baldwin) 과 그의 동료들이 성가시다고 생각해 묵과했던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윈스턴 처칠의 경고를 떠오르게 한다.
사실 오늘날 영국의회에는, 몇 안 되는 의원들만이 세계에서 가장 억압되어있는 국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의 이름은 열 손가락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지난 달 로드 알턴(Lord Alton)이 북한인권에 관한 토론을 상정했을 때도, 영국장관과 반대편의 대변인 이외에 겨우 5명의 의원들만 발언을 했다. 그 의원들은 ‘현대판 홀로코스트’에 심취한 소수 사람들 중 일부였으며, 그들 중 대부분이 홀로코스트 문제에 심취하여, 호워의 “포용”정책의 일부를 지지하기도 했다. 그들이 반대하고자 했던 것은 단지 침묵, 유화, 공조였다.
십년 이상 북한문제에 대해 선구자 역할을 해온 로드 알톤(Lord Alton)은 "다리 놓기"(호워가 알아야 할 것들)라는 제목의 책을 집필했으며, 북한을 네 번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한 그는 지난 주 회의를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했다.
“독일 목사로 반나치 투쟁을 벌여온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가 이런 말을 했다 ‘당시 우리는 사악한 행위에 대해 침묵하는 목격자들이었다.' 이제 이 같은 말들이 다시는 우리를 표현하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조만간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들고 나와 북한의 반인도범죄에 대한 대규모의 운동을 전개하지 않는다면, 독일 목사 본회퍼의 말들은 쉽사리 우리의 묘비명이 될 것이다.
Benedict Rogers,
East Asia Team Leader at Christian Solidarity Worldwide,
Deputy Chair of the Conservative Party Human Rights Com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