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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October 27, 2011
오길남 박사와 그의 가족 이야기
오길남 박사는 남한의 엘리트 출신으로, 한때 유신체제에 강력히 반대하며 독일 유학길에 오른 인물이다. 
 
그 당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3호 청사는 독일에 공작원을 파견하여, 오박사에게 원하는 만큼 경제학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것이니 북쪽으로 넘어올 것을 독려했다. 또한 북한당국은 간염으로 투병중인 오박사의 아내를 치료해줄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 같은 유혹에 흔들린 오박사는 1985년, 마침내 그의 아내와 두 딸, 혜원․규원을 데리고 북한에 입국하기로 결심한다. 
 
“참 어리석은 행동이었지!” 오박사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평양에 있는 공항에 도착한 직후, 그는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오박사의 가족들은 모두 산기슭에 자리한 군인 수용소로 보내졌으며, 그곳에 고립되어 반복적으로 김일성 사상교육을 주입 받았던 것이다.
 
이듬해, 오박사는 독일에서 유학중인 친북성향의 남한 학생들을 회유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단, 그의 가족은 북한에 남아 있는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의 아내인 신숙자씨는 오박사에게 혼자서라도 다시 망명할 것을 당부했다.
 
오박사는 1986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북한의 공작원들의 시야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고, 망명에 성공한다. 이후 독일에서 체류하면서 가족을 송환할 수 있는 방법들을 물색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1992년 남한으로 재입국했다. 그는 북한에 억류된 자신의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오박사에 의하면, 민족의 작곡가라고 불리는 윤이상은 “당신은 당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김일성을 배신했다. 또한 당신이 칠보산연락소 (대남 라디오 방송인 ”구국의 소리방송” 업무를 담당하는 곳)의 기밀을 알고 있는 이상, 우리는 당신의 가족을 인질로 삼을 수밖에 없다.”며 그를 압박했다고 한다.
 
또한 윤이상은 신숙자씨의 편지를 건내며, 오박사에게 다시 북한으로 넘어올 것을 요구했다.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강요된 것으로 보이는, 그의 아내와 두 딸들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도 있었다.
 
1987년 이후, 신숙자씨와 두 딸 혜원․규원은 악명 높기로 소문난 요덕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요덕 수용소 출신 탈북자 안혁, 김태진 씨 등은 모두, 그들이 요덕 수용소에서 오박사의 가족을 만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1995년까지 수용소 출신자들이 신숙자 씨와 그의 두 딸을 목격했다고 전한다.
현재 남한과 국제사회 NGO들은 오박사의 아내와 두 딸들을 수용소에서 구출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캠페인은 남한 주민들과 세계인의 관심을 일깨우고, 반기문 UN 사무총장에게 신숙자씨와 혜원․규원, 그리고 경원의 안전을 보장할 것과 그들을 남한으로 데려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신숙자 씨 모녀 구출을 위한 청원서가 유엔 인권이사회의 “임의적구금에 관한 실무그룹”에 접수되어, 실무그룹은 진상을 조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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